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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년 독일 삭소니아 아이슬레벤에서 태어난 "마르틴 루터" 20세에 철학,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505년 친구가 벼락으로 급사하자, 성녀 안나에게 수도 생활을 맹세하고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에 들어가 2년만에 수사 신부가 됩니다,
그후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가 되었고 1512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게되지요.
그런데 이때 성 베드로 대성전 건립을 위해 대사령이 공포되었고 독일은 알베르토 대주교가 책임을 맡게되었으며, 당시 명성이 높던 "뎃젤"신부는 선전위원으로 임명 되었고, 이를 시기한 루터는 마침내 1517년 신학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던 관례 에 따라 텟젤 신부가 비텐베르크를 방문한 때를 맞춰 그에 반항하는 95개 조항의 반박 논문을 성당문에 부착하였고 텟젤신부 역시 106개 조항의 반박 논문을 부착합니다. 서로의 논박이 심해지자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의 오견을 정정도록 하였고 루터가 계속 고집하자 1522년 교황은 "엑수르제" 라는 교서를 내려 반성을 촉구하게 이릅니다. 이에 루터는 공개 석상에서 교서를 불사르게 이르자 교황께서는 루터를 파문하기에 이르렀고, 이 때부터 루터는 공공연히 교황을 배척하고 성세와 성체 성사만 제외하고 모두 폐기한 다음 3대 원리를 내세웠습니다.
1) 사람은 원죄로 완전히 부패 되어 자유가 없다.
2)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것이요. 인간의 선행, 고통 등으로 됨이 아니다.
3) 신앙의 규범은 성서 하나뿐이다. ( 이상 마르틴 루터의 3대 원리 )
그 후 1525년 26세의 "카타리나 보나" 수녀와 결혼, 154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이때 일부 탁락한 성직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위 종교 개혁이라는 것은 이와는 무관합니다. 문제는 정통 교리를 자기 임의대로 뜯어 고치려는 루터의 엉퉁한 생각에 있었습니다. 그가 한 평범한 인간이며 타락한 신부로서 구원의 하느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소위 종교 개혁이라기 보다 루터의 엉뚱한 생각에 하나가 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져버리고 종교의 분열만을 조장한 결과를 가져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후 교권을 완전히 무시한 성서의 자유 해석의 결과만 보더라도 1985년 12월 25일 현재 우리나라만 약 90여개의 종파가 그리고 세계에는 약 500여개의 종파가 난립하는 현상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3장 28절대로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 관계 없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신앙으로만 구원'을 주장하나 야고버서 2장 26절에는 "영혼이 없는 몸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원죄로 부패해서 어떤 선행도 할 수 없다고 하여 엉뚱하게 인간의 선행을 무시하지만 자신의 수도 서원을 깨뜨린 것을 변명하는 듯합니다. 또한 가톨릭을 탄압하던 로마는 성베드로 성전을 관광자원으로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 <가톨릭 교리 사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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